Private Utopia, 200502

2020. 5. 2. 01:11글/일상

벌써 5년 지났다. 내 프라이버시에 관한 설명은 이것 하나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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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스토리를 개설할 생각은 몇년 전부터 했었다. 초청장 시스템 때문에 그간 시도를 못 했을 뿐. 브런치와도 저울질해 봤으나 그쪽도 발 들이기 만만찮은 동네인지라 ― 티스토리에 새 터를 잡기로 했다.

 

 물론 내 자신의 게으름도 한가지 원인이다. 이 글도 티스토리 개설 후 한달 가까이 지나서야 쓰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비공개로 쓴 과제 제출 백업용 엽편이 하나 있지만. 더 부지런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갈수록 나태함이 도진다. 이러다 길바닥에 나앉아도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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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는 특정한 주제를 정해서 밀고 나갈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여러 관심사를 두고 비정기적으로 회전문을 돌리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이상,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리지 않고 쌓아 나가야 공백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10대 후반 네이버 블로그, 20대 초반 페이스북에서 놀던 방식 그대로다. 다만 하나. 이젠 보다 간결하고 정갈한 문장을 써야 하겠다. 20대 후반이면 더이상 무절제한 의식의 흐름이나 감상적인 미문 따위로 미숙함을 용서받을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분노와 무기력으로 허비한 지난 몇 년간 너무 글과 멀어져 있었다. 다른 방향의 돌파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거기서 뚜렷한 성과를 얻어낸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너드라 자칭하기에도 너드로서의 삶에 전혀 충실하지 않다. 학적만 달랑 걸쳐 둔 백수건달일 따름이다. 열심히 글 쓰던 때가 그나마 현생도 열심히 살 때였다. 그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뼛속까지 스며든 아마추어리즘을 프로페셔널로 승화시키는 건 그 다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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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세워 둔 카테고리들은 당장 뭐라도 쓸 거리가 있는 분야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더 추가될 수 있다. 그게 되도록 지적으로 탐구할 가치가 있든지 실생활에 유용한 것이면 좋으련만. 당분간은 평상시에 쌓아두는 잡문이나 습작, 내지는 취미생활을 주요 콘텐츠로 다룰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향유하는 취미들은 대개 유행이 지났거나 성질이 매니악하다. 고로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상정할 시 다루는 것 자체로 접근성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그래도 여기서는 가급적이면 읽는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공할 것이다. 제아무리 티스토리 제목이 "개인적인 이상향"이라지만, 애초에 혼자 읽고 쓸 일기장을 만들 셈으로 온라인 매체를 선택했을 리가 있나. 어찌 보면 그것부터가 일종의 나잇값이자 프로의식이다. 아, 물론 닉값은 결코 해선 안 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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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픽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제로베이스로 출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드나드는 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든 환영한다. 이곳에서 누군가 생각할 거리를 얻거나 알아가는 바가 생긴다면 기쁜 일이다. 혹은 내가 댓글을 통해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겠다.

 

 다만 한 가지. 적어도 이곳만큼은 세상에 만연한 분열과 비하, 혐오와 배척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기를 소망한다. 내가 페이스북의 민낯과 실명을 버리고 다시 익명의 프로필에 숨어든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Private Utopia에서 Free City로 거듭나기를 꿈꾸면서. 그때가 되면 이 멋대가리 없는 필명도 달리할 수 있겠지.